[언론인터뷰] "1등 몰아주기식 반도체 전략 한계…대만식 생태계 전환 시급하다"
새 정부에 바란다
신현철 반도체공학회장
韓, 메모리 치우쳐 위기에 취약
파운드리가 탄탄하게 받쳐줘야
팹리스·후공정 업체까지 성장
대만, 생태계 전반에 골고루 투자
저가·고급모델 다양한 강자 키워
정부는 '후방 지원'에 머물러야
신현철 반도체공학회장이 서울 월계동 광운대 연구실에서 반도체 회로를 새겨 넣는 포토 마스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솔 기자
신현철 반도체공학회장(광운대 반도체시스템공학부 교수)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버티고 있지만 반도체산업 전반은 구조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새 정부는 메모리반도체 중심에서 벗어나 팹리스, 파운드리, 후공정을 아우르는 생태계 중심의 전략을 새롭게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KAIST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곳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삼성전자와 미국 퀄컴, 독일 다임러 등을 거친 시스템반도체 전문가다. 올해 1월부터 반도체 연구계를 대표하는 반도체공학회장을 맡아 학계와 산업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신 회장은 한국 반도체산업의 성공 모델이 이젠 수명을 다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 반도체산업은 메모리에 치우친 산업 구조를 장기간 유지해왔고,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위기에 극도로 취약하다”며 “생태계 전반을 이끌고 갈 파운드리가 없다 보니 팹리스, 후공정 업체의 성장이 더디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만을 참고할 만한 국가로 제시했다.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중소 팹리스, 패키징 전문기업, 소재·장비 기업까지 반도체 생태계가 고르게 구축돼 있다.
신 회장은 “한국 특유의 ‘1등 몰아주기’ 전략이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로 이끌었지만 이젠 한계에 봉착했다”며 “대만은 생태계 전반에 대한 고른 투자로 저가 부품 업체부터 고급 모델까지 다양한 영역의 강자를 키워 글로벌 반도체의 중심지가 됐다”고 했다.
반도체 생태계 강화의 실마리는 파운드리에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신 회장은 “파운드리가 탄탄하게 받쳐줘야 팹리스가 안심하고 양산 파트너를 찾을 수 있고 후공정 생태계도 연쇄적으로 성장한다”며 “삼성 파운드리를 TSMC와 대적할 수 있도록 키우고, DB하이텍 등 점점 약해지는 중소형 파운드리 기업 육성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인공지능(AI) 100조원 투자, 팹리스·첨단 패키징 지원 확대 등에 대해선 “반도체 생태계의 불균형을 개선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연구개발(R&D) 분야의 구조적 문제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R&D 평가 체계 조정을 대표적 예로 꼽았다. 신 회장은 “정부 연구사업을 선정하고 평가할 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논문영향력지수(IF), 산업통상자원부는 기업의 매출을 중심으로 경직된 평가를 한다”며 “반도체와 컴퓨터공학은 구조적으로 IF가 바이오나 의학의 10~20% 수준에 그치고, 팹리스와 후공정 분야는 매출보다 기술 축적이 중요한데 이런 연구 분야와 기업이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는다”고 말했다.
반도체 인재 양성 시스템 문제도 언급했다. 신 회장은 “우수 인재가 의대, 치대, 약대로 몰리면서 서울대 이공계 대학원도 학생이 다 차지 않고 있다”며 “그러면 바로 아래 대학에서 서울대로 학생이 이동하고 도미노처럼 이공계 대학원이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대 쏠림 현상이 심해진 배경엔 보상 시스템의 실패가 있다고 봤다. 그는 “미국에선 엔지니어가 주식형 보너스인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등으로 의사 못지않은 보상을 받지만 한국에서는 급여 말고 유인책이 거의 없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역할은 개입이 아니라 후방 지원에 머물러야 한다고 했다. 신 회장은 “엔비디아 칩을 일부 대체하는 AI반도체를 생산하는 한국의 리벨리온이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에서 투자받으면서 중동 시장에 거는 기대가 컸는데 곧바로 미국이 움직여 엔비디아 칩을 사우디에 팔더라”며 “이런 사례를 볼 때 정부는 기업이 하기 어려운 외교나 국가 간 협상에 집중하고, 기업이 뛰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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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몰아주기식 반도체 전략 한계…대만식 생태계 전환 시급하다"